Home > 프로그램 소개 > 요가 프로그램    
요가란?
요가란 말은 산스크리트로서 결합한다는 어원(語源)인 유즈(yuj)에서 시작되었으며, 마음을 긴장시켜 어떤 특정한 목적에 상응(相應) 또는 합일(合一)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인도에서는 육파철학(六派哲學), 즉 베다(Veda)를 중심으로 하는 미만사(Mim?ms?:聲論派)와 베단타(Ved?nta:吠檀多派), 논리적 특징을 중시하는 니아야(Nyaya:正理論派)와 바이세이시카(Vaiseisika:勝論派), 《우파니샤드 Upaniad》를 중심으로 하는 상키아(S?mkhya:數論派)와 요가파(瑜伽派)로 발전하였으며, 당시의 모든 학파는 그 실천방법으로서 요가를 수련했다.
1. 요가
요가는 정신 정화와 신체적 훈련을 통해서 인간이 본래의 타고난 능력을 계발하고 우주의 현상을 파악하여 이에 순응하는 실천철학이다. 범어의 YUJ(말에 멍에를 건다)가 어원인 요가(YOGA)는 자연과 인간을 통일하여 진실한 자가를 찾고 우주 현상을 올바르게 관찰하여 실체를 알고 완전한 자유를 누리자는 것이 목표이다.
2. 요가체조
요가 체조는 신체의 훈련에 의해서 마음을 수양하고 생활을 개선하는 것이며 인간이본래 타고난 균형, 유지력과 적응력을 강화하고 일상생활 중에 생긴 나쁜 자세를 수정하여 바른 자세, 정신, 통일 그리고조화식이 되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하고 있다.본래는 84만종이 되는 체위가 있었으나 목적이 같은 군끼리 정리하여 약 200여종이 주로 수행되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23종이 되어 그 변형을 이루고 있다.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서 운동 또는 체조라고 표현했지만 조용히 않아서 호흡과 명상을 하는 것이 좌선이라면 요가의 체조는 동작을 수반하는 선, 즉 동선인 것이다. 동작을 취하면서 그 동작의 목적과 효과를 이해하고 자극 부위에 정신을 통일하여 체위와 호흡이 서로 일치되어야 한다. 신체의 특정부분에 정신을 통일하고 체위에 따라서 자극이 미치는 곳으로 정신 통일점을 이동하면서 의식과 무의식을 통일하고 몸을 앞뒤 좌우로 움직여서 균형을 갖추고 긴장과 이완의 조화로 인해서 심신이 안정되고 피로가 쉽게 회복된다. 운동 중에는 숨을 조용히 깊게 강하게 토하면서 동작이 완성되었을 때 잠시 동안 참고 자극점과 동작을 일치시킨다.

그리고 항문과 엄지발가락에 힘을 주어 아랫배와 허리의 힘으로 운동을 한다.
심방에서 먼 부위부터 시작해서 순차적으로 심장부를 자극하고 준비 운동,본 운동, 정리 운동, 그리고 휴식의 순서로 하여 몸의 생김새를 파악해서 자신이 해야 할 운동을 선택하여 수련하는 것이다.
또한 요가는 통일, 조화, 균형을 뜻합니다.
넓게는 인간과 자연과 우주의 통일, 좁게는 몸과 마음과 영혼의 균형과 조화 끊임없이 균형과 조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크게 3부분으로
나눕니다.
 
* 아유르베다
아유르베다(Ayurveda)라는 말은 '생명의 과학’이라는 뜻의 산 스크리트어로서, 아유(Ayu)는 '삶'을 의미하며 베다(veda)는 '앎’을 의 미하는 것으로 5천년 이상 일상생활에서 활용되어온 인도의 의학체계입 니다.
인도에서 수 십세기 동안 시행되어 온 삶의 지침들 중에는 요가 와 탄트라와 아유르베다가 있는데, 요가가 신성(神性) 즉 진리와의 결합 을 가르친다면, 탄트라는 진리와의 궁극적인 결합을 가능케하는 에너지 조절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고, 아유르베다는 생활 의 과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유르베다는 ‘모든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질병을 치유할 수 있는 능력 을 갖고 있다.’는 기본 철학 하에 모든 인간은 '종교적 본능’, '경제 적 본능’, '생식적 본능’, '자유를 향한 본능’의 4가지 생물적 또는 영적인 본능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본능들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균형있는 건강이 필요하다는 것을 현대인들에게 합리경험의학으로의 체계입니다.
 
 
50년전 1955년 장인선 선생 한국최초로 신명요가원 서울 서대문구에 설립
장인선 선생님은 키 1m76cm에 75kg의 모두가 인정하는 미남이시고 판단력과 순발력이 뛰어 나셨으며 검도를 좋아하시고 승마를 즐기신 그시대의 멋쟁이 이셨습니다.
그리고 책을 읽으시면 책한권을 통째로 외우시는 기억력이 탁월하시고 6.25때는 안성 미리내 전투에서 괴뢰군들을 무찌르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싸우신 애국청년 이셨습니다.
불행하게도 전투에서 포위를 당해 함께 싸우던 전우들과 함께 잡혀가서 집단 총살형을 당하셨습니다.
다행히도 장인선 선생님은 눈을 떠보니 수십명이 쓰러져 죽어있었고 장 선생님은 총알이 옆구리를 뚫고 나가며 창자가 밖으로 나와 있는 것을 보고 창자를 밀어넣고 사력을 다해서 집으로 돌아와 마당에서 의식을 읽고 쓸어 지셨습니다.
외부의 눈을 피하기 위하여 별다른 치료도 못한채 집에서 사모님의 간호로 힘들게 생명을 건질수가 있었으며 총알이 옆구리를 뚫고 나가며 화약속의 독이 온몸으로 퍼졌습니다.
이 후유증으로 위장병과 심장병 그리고 신경쇠약증상 불안공포증 불면증으로 심하게 고생하시던 중에 당시 가깝게 지내시던 이교선 상공부 장관으로부터 미국유학중에 구입하였다 면서 미국요가책(Physical-yoga)을 주시며 요가를 해보면 도움이 될것 같아 가지고 왔다면서 선물로 요가책을 받고 집에서 틈나는 대로 요가훈련을 집에서 하고 있을때 장인선 선생의 친구이신 조종익 해군대장으로부터 일본에서 구입했다며 일본요가책("기적의 요가"저자 오끼마사히로)을 또 가지고 오셨다 일본말을 유창하게 하시는 장인선 선생은 책에 있는 요가훈련 프로그램 순서에 따라 요가를 연습한 것이 한국요가의 출발점이 된 것입니다.
요가수련에 매력을 느끼고 건강이 점점 좋아지시자 장인선 선생님은 일본으로 건너가 "오끼요가센터"에서 요가를 수련하시며 공부를 하시고 일본의"생명의 실상"도 함께 공부를 하시고 귀국하시어 한국적인 요가수련법을 체계화시켜 요가보급을 시작 하셨다.
장인선 선생님과 이교선 상공부장관은 가까운 친척분이며 조종익 해군대장은 친구로서 서로 많은 도움을 주시는 분들이었다.
마침내 장인선 선생님은 1955년 서울 북아현동에 작은 한옥집에서 녹음기 한대를 설치하시고 요가책을 주셨든 이교선 장관과 김근욱(중앙정보부장 김형욱씨 동생)박한익 장군..등 10여명이 요가수련에 최초로 참가하게 되었다, 고 당시 서울대 재학중이던 장만수씨(장인선 선생 조카)의 증언이다.
 
북아현동에서 교남동(독립문옆) 이전 개업
한국최초로 요가원을 개업하였던 북아현동 한옥집에서 1958년 교남동(독립문 옆) 건물 2층(15평)으로 이전하였다 한옥 응접실에서 수련하다가 이전을 하니 아주 넓어 보였다 요가회원들은 하루에 20여명으로 늘어났는데 주로 외국에서 공부하신분 들이다.
반도호텔 사장, 국도극장 사장, 3.1빌딩사장, 장군, 정치인 등 사회 저명한 인사들이 여러분 모여서 요가수련을 하였는데 분위기가 아주 좋았다고 한다.
교남동의 요가원이 좁을 정도로 요가수련생이 늘어나서 1961년 서대문로터리 적십자병원정문 건너편 2층(30평정도)으로 또 이전을 하였으며 이전 하자마자 요가발전에 탄력을 받게 됐다.
장인선 선생님의"건강한 마음을 얻기 위한 요가 의식훈련"운동도 잘못하면 독이되고 과학적으로 훈련해야 약이된다..등 명강의 내용들이 신문에 보도되자 각대학교의 수재급학생들과 사회 저명인사들이 요가원에 몰려들기 시작 했다.
당시 경희대 체육과에 재학중이며 장인선 선생님으로부터 요가를 배워서 하루 2회 요가를 지도하셨든 장익수선생의 증언이다.
 
장종수선생 요가와의 첫 인연
장종수선생은 1965년 경기도 안성 안법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해군사관학교 진학상담을 하기 위하여 삼춘이신 신명요가원 장인선원장님을 방문한 것이 요가를 처음 만나는 인연이 되었다.
다음날 요가원을 방문하여 처음보는 요가수련장면은 궁색.. 그 자체였다. 유도를 하면서 체력을 단련하며 90kg이 넘는 거구의 체구를 가지고 있는 본인이 처음만난 요가훈련장면에서 꼬고 앉아 있는 모습이나 비틀고 거꾸로 서고 있는 모습이나 입으로 이상한 숨을 쉬고..힘들도 없이 앉아있는 신명요가원의 요가분위기를 처음 접하는 저에게는 젊어서 그런지 요가는 참 시시콜콜하게 생각했으며 요가를 배워 보겠다는 의욕이나 욕심도 관심도 없었다.
요가훈련실 바닥에서는 냄새가 심하고 추리닝도 입지 않고 상의는 내복차림이고 하의는 집에서 입는 잠옷 차림이다.
탈의실도 없고 옷보관함도 없고 샤워장도 없다.
저에게 우상이던 삼춘 장인선 원장님이나 외삼춘 이교선 상공부장관에게 실망도 컸다.
그런데 안성초등학교를 설립하시고 교장을 하신 장호선 큰아버님이 중풍으로 고생 하셨는데 신명요가원에서 요가훈련을 하시고는 앉지도 못하시고 누워만 계시던 분이 일어나셔서 지팡이를 잡고 걸어 다니시는 모습을 보고 요가건강법의 신비스러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미국요가책(Physical-yoga)을 탐독하면서 신기한 요가가 아니라 믿음직한 요가수련법임을 느끼게 되었었다.
그런데 본인에게 급작스런 이상한 징후가 왔다, 해군사관학교 신체검사에서 고혈압으로 낙방된것에 쇼크를 받고 평소 고생하던 고혈압과 위장병 간염이 악화되어 탈모가 심해지고 허리신경통으로 고생이 시작 되었다 특히 위장병으로 심한 고생이 시작 되었다.
그래도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합격통보를 받고 국민 민생복지를 선진국 수준으로 끓어 올려 국민들로부터 존경받는 정치가로의 꿈을 계획하여보니 컨디션도 좋아 지는 듯 했다.
그것도 순간이었다.
내몸은 몹시 악화되기 시작하여 90kg이 넘는 튼튼했던 내몸은 매일 설사에 빈혈이 심하더니 체중은 62kg까지 급격히 줄었다.(한국최초의 요가책인"소화된 요가"책 아사나편 모델이 본인인데 촬영당시때가 고생을 할때다)
안성에서 정치가로 활동하신 아버님(장지선)이 문병오셨다가 돌아가시면서 12남매중에 가장 똑똑한 종수가 회복이 어려울 것 이라면서 자식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셨다고 한다.
요가수련에 믿음이 가지 않았던 저에게 삼춘(장인선 선생)은 '네가 살길은 요가수련을 열심히 하는 길 뿐이 없다'고 하시며 호흡법을 가르쳐 주시고 아사나를 가르쳐 주시면서 기분 좋았던일을 생각하고 즐거웠던 일들만을 웃으면서 상상하라며 명상을 시켜 주셨다.
3개월간 매일 5시간씩 호흡과 요가아사나 명상을 하고 아침마다 북아현동 뒷산으로 등산을 하면서 살려고 노력 했다.
소화가 안되어 밥을 못먹고 죽을 조금씩 먹으면서도 요가수련을 열심히 하였드니 식욕이 생기기 시작했고 얼굴혈색이 맑아지기 시작하였으며 밤에 깊은 수면을 취할 수가 있었으며 말을 많이하면 목이 쉬기 때문에 평소에 말수를 줄이는 훈련이 되어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빈혈증세다. 빈혈증세가 심하여 자주 쓰러졌는데 거울을 보다가 거울로 쓰러져 이마를 16바늘을 꿔메는 상처를 입은 것이 아직도 흉터로 남아있다.
이런 질병들이 서서히 호전되어 창백했던 얼굴에 혈색이 돌아오고 눈동자가 광채가 난다며 장인선 선생님이 기뻐 하셨다.
내몸이 건강해지는 것을 보고 다른 요가회원들도 더욱 열심히 요가수련을 하게 만드는 분위기로 반전하였다.
나는 요가책에서 이런구절을 읽었다 "병을 고칠려는 집착과 욕심을 부리지 말고 병이 내몸에서 스스로 떠나 도록하는 훈련을 하는 것이 건강을 회복하는 원리"라는 글귀가 내마음속에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요가는 나의 생명을 구해줄 것 같은 믿음이 생겼다.
요가는"평화로운 삶을 위한 수련법"이다. "건강한 삶을 위한 수련법"이다. 내적인 평화와 정신과 육체의 조화를 추구하는 수련법이다. 이런 신념으로 스스로 자신의 허울을 벗기 위한 자신의 초점을 찾아가는 "정신적인 인생의 여행길이다"이 여행에 몸과 마음이 함께 할때 내몸의 모든 고통이 스스로 떠난다는 이치를 깨닫고 본격적인 요가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그래서 인지 요가회원들이 많이 늘어나서 신명요가원은 또다시 종로 낙원동으로 이전(60평)하였다 당시 장인선 원장님은 저에게 너는"화를 복으로 만드는 능력"이 있다. '너는 미래 훌륭한 인재가 될 것이다. 너는 존경받는 큰 지도자가 될 것이다'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 그러나 제 귀에는 그런 말씀은 들리지 않고 빨리 건강을 회복하여 친구들과 어울려 광화문 대학로나 무교동에 가서 술 마시고 놀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낙원동으로 이전한 후 하루에 4-5회의 요가수업에는 항상 회원이 많았고 대부분회원들은 노이로제 고혈압 위장병..등 초기 또는 중증 환자들이었다. 운동신경이 발달된 저로서는 요가운동은 싱거울 정도로 잘했다. 5개월이 지나자 건강이 많이 회복되었고 얼굴혈색도 맑아지고 친구들도 만났다.
나는 요가운동하는 재미에 푹 빠졌으며 요가와 함께 내 인생도 간다는 믿음이 강해지기 시작 했다.
요가는 나에게 종교와 같았고 하루 5시간 이상 요가수련을 했다.
그러던 어느날 장인선 원장님이 저보고 요가운동 아사나를 가르쳐 보라고 하시기에 처음 요가를 지도한 것이 계기가 되어 요가와의 인연이 시작 된 것이 생존해 있는 한국요가 요가지도자중에 가장원로인 본인은 한국요가를 지켜온지 벌써 40년이 됐습니다.
 
장인선선생 대한요가협회 창립 회장 취임
1965년10월 장인선 원장님은 "대한요가협회"를 창립하시고 회장에 취임 하셨다. 부회장에 장익수, 양재원(국악원장), 이내동(감사원(구.심계원) 계장), 이순구 서울경찰청장, 김창범 육참총장 비서실장, 장종수 부산지부장, 이보인 대구지부장이 취임하였다.
부산지부장 장종수(1966년), 인천지부장 권창세(1966년), 대구지부장 이보인(1967년), 송영선원장(부산요가협회 서면요가원장)이 개업하시고 그후 종로에는 황영석선생이 청주는 김정희선생님이, 원주는 신동길선생님이 제주도는 김용섭선생님이 동대구는 조준화선생님 등 많은 장인선 회장님의 제자들이 전국 주요도시 10여곳에서 요가원을 1 2년 간격으로 개업하셨다.
대한요가협회 신명요가원의 요가수련생들 중에는 김재규 전중앙정보부장, 장경석 27사단장, 조종익 해군대장, 조중훈 대한항공사장, 이교선 상공부장관, 이순구 경찰청장, 해병대 박효열 대령과 육군본부의 장성들과 국회의원 대학교총장..등 귀하신 분들이 요가훈련에 참여하시었으며 요가발전에 물질적으로협조하셨을 뿐 아니라 정신적인 기둥역할을 하신 분들입니다.
장종수선생은 장인선스승의 권유로 부산시 범일동에 1966년 가을 부산요가협회 부산요가원을 부산최초로 설립하였다.
화술이 좋으셨던 황영석선생은 종로에서 개업하였지만 몇년후에 요가를 떠나 목사가 되셨으며 씨름을 잘하시고 의리가 있고 남성적인 매력이 넘처 났던 이보인선생은 미국 보스턴에서 요가센터를 운영하고 계시며 장익수선생은 대한요가협회부회장을 맡아 전국의 15곳의지부와 요가회원들의 조직관리 및 요가지도자교육을 하시다가 장인선스승님의 타계로 1978년 대한요가협회 회장으로 취임하셨다.
장익수 회장은 육군본부, 총무처, 새마을연수원, 공무원연수원, 서울경찰청...등 많은곳에서 요가를 지도하시면서 서울 성북구에 진아단식원을 개업하시고 단식원으로 대한요가협회 사무국도 이전을 하였다.
이들이바로 장인선선생님의 수제자들로서 한국의 요가를 이끌어오신 1세대 요가지도자들이다.
몇 년후에 장인선 선생님의"소화된 요가"책에 의지하던 요가지도자들에게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그것은 동국대학교 정태혁 박사께서 요가철학학문을 다룬 요가책을 출간 하시어 요가지도자들에게 인도요가의 세계를 볼 수 있는 눈을 뜨게 하여 주신분으로 항상 존경하는 분이다.
그후 김광백선생은 한국요가협회 2대회장으로 취임 하셨으며 부산에서 활동하는 저와는 서로 존경하고 의지하는 지인 사이다. 김광백회장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열악한 협회운영을 이겨내며 지켜왔다. 당시는 요가활동으로는 생활이 어려웠기 때문에 협회장직을 내놓고 고민한적도 있었다.
그런 환경속에서도 회장을 맡아 한국요가발전에 큰공을 세운분이다.
고인이 되신 김현수선생은(한국요가회장) 의대출신으로 마음수련없이 육체의 질병은 하나도 고칠수 없다는 논리로 교육시킨 요가계의 큰지도자였다. 이들이 한국요가발전에 큰공을 이룩한 2세대 요가지도자 들이다.
그러나 불행했던 역사도 있다.
당시 김광백회장의 권유로 김현수선생, 장종수선생, 정판식선생..등 한국을 이끌어가는 큰 지도자들이 한국요가협회의 중책을 맡아 뭉쳤었다.
그러나 민주화 되지못한 협회운영방식 즉 일인독주의 회장자리 분쟁 때문에 한국요가협회는 쪼개지고 제각각 새로운 단체들을 만들어 큰 지도자들이 돌아올 수 없는 다리가 놓이게 된 것은 한국요가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게된 마음 아픈 불행한 기록들이다.
그후 10년이상 한국의 요가는 깊은 수렁에 빠겨 헤어나지 못하고 허우적 거리고 있을때 이정훈(한국요가협회장), 정강주(한국요가문화협회장), 송방호(송방호요가아쉬람 회장), 신석규(한국요가지도자연합회장), 정판식(국제요가협회장), 안지용(한국요가연구회장), 장미수(코리아요가센터 원장), 이희찬(온살이 요가센터 원장)...등 많은 요가지도자들이 높은 학력과 많은 지식정보를 바탕으로 인도나 미국 일본..등 여러나라를 유학하고 요가경전들을 만나며 수준높은 요가보급에 앞장선 분들로서 한국요가가 전국적으로 발전할수 있도록 기반을 만들어준 3세대 요가지도자들이다.
협회운영은 시끄럽고 고통스러워도 내가 앉을 자리는 민주적으로 선택해야하고 모든 요가지도자들이 협회가 구심점의 중심이 되도록 하는 높은 의식 정책을 집행하여 요가지도자들의 보금자리를 만들어야 하는 책임의식이 곧 요가지도자의 기본인 야마(Yama)와 니야마(Niyama)를 지키는 일입니다. 지도자들이 근본의 기본부터 인격의 한계를 보인점은 후배들에게 부끄러운 역사를 남기게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협회가 한개인의 자리가 되면 결국 그단체는 비리와 아부집단으로 형성되어 무명단체나 비리단체로 전략 되는 것이 상식 입니다.
이런 지난날의 역사를 이겨내고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면서 인정받는 세계속의 한국요가는 현재보다도 미래가 더욱 인정받는 다양한 쿼리큘럼화 될 것이기에 많은 지식인들이 요가지도자의 길에 합류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요가에 인생을 함께하는 분들이 늘어나는 것은 곧 한국요가의 믿음 입니다.
장종수선생은 동아대학교와 부산정보대 요가학과 교수로 계시고 김광백선생은 명지대학교에서, 정강주선생은 호원대에서, 안지용선생은 조선대에서 그 외 여러대학의 요가교수들과 한국을 대표하는요가철학자 정태혁 선생과 이태영선생 ..등 많은 한국요가지도들이 다양한 방향에서 최선을 다하여 후배양성에 노력하고 계시기 때문에 한국요가는 전국민의 가슴속에서 사랑받고 존경받는 자리가 될 것 입니다.
또한 한국최초의 원정혜 요가박사가 탄생하고 수십명의 석사가 탄생됐으며 10명이상이 현재 박사과정에서 정진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요가지도자들은 더 많은 요가지식정보를 접할수 있는 좋은 환경속에서 훌륭한 요가지도자들이 많이 배출되고 있으며 열심히 요가학문에 정진하고 있는 지도자들에게 경의와 감사를 보냅니다.
 
국내최초의 요가책 발간
1966년부터 우리국민들의 환경과 성격에 맞는 한국적인 요가책을 펴기로 장인선회장님의 방침에 따라 표지타이틀을 "소화된 요가"로 결정짓고 요가출판을 위해 장인선 회장님은 정신과 의식에 대해서 집필하시고 장익수 부원장은 프라나야마(호흡법)와 식이요법에 대해서 집필하시고, 장종수는 체력을 관리하고 균형잡힌 몸매를 만들어내는 아사나를 담당집필하기로 하고 한국최초의 요가책 출판을 위해 노력한 결과 1967년5월25일에 한국최초의 요가책 "소화된 요가"가 출간 되었다.
오늘날의 요가수련은 아스탕가-8단계요가수련을 기본원칙으로 요가수련이 시작되지만 그당시에는 4단계통제훈련법으로 요가수련을 하였다.
즉 호흡통제,육체통제,음식통제,의식통제수련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장종수선생은"소화된 요가"책속의 아사나(Asana)와 프라나야마(Pranayama)의 모델로서 이론과 실기를 완성 시킨 분이다.
이런 계기로 장종수선생은 일본의"생명의 실상"과 하타요가(Hatha-Yoga)와 아스탕가-요가(Ashtanga-Yoga), 인도6파철학의 하나인 상키야(Sankhya)철학과 생활과학인 아유르베다(Ayurveda)-요가학문에 심취하게 되었으며 요가4육훈련(체육.지육.덕육.영육)를 통해서 인생의 목적과 철학이 희미하게나마 보이기 시작 했다.
"몸이란 마음을 담는 그릇이며 마음이란 지혜를 담는 그릇이고 지혜란 영혼을 담아 해탈에 이르도록 하는 그릇이다"라는 의미를 깨닫고 큰 그릇 만들기 위하여 의식을 확장하고 넓이는 훈련에 몰입 하면서 느끼는 것이 요가훈련이 꼭 자신만을 위하는 수련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이해하면서 이웃에게도 화목과 평화의 정신을 베풀고 사회에 밝은 미소와 웃음, 인간의 체취를 느끼는 아름다운 사회건설에 이바지 하면서 남북화해와 세계평화를 위해서 봉사하는 인류애에 마음을 심으며 봉사하는 작은 행동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전세계에서 유일한 가장 불행한 현실이 우리나라에 있습니다.
같은 조국에서 같은 민족끼리 하나로 통일되지 못하고 있는 분단의 조국입니다.
서로 총뿌리를 마주하고 있는 분단의 현실을 전세계에 알리고 남북이 힘을 합쳐서 전쟁없는 평화통일이 실현 되도록 통일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대한민국팔각회 총재를 하면서 전국 해외의 1만명의 회원들과 함께 각국을 다니며 통일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저를 인정하는 국가기관에서 남북화해운동에 협조요청이 와서 남북회담대표로 평양을 여러번 방문하였고 서울회담과 금강산회담에서도 북측의 고위층과 여러번 회담을 하였다.
본인이 평양을 가면 어느 인사가 "통일이 되면 장종수선생이 평양시장을 하시라요"라며 농담을 할 정도다.
2002월드컵때는 부위원장으로 2002아시안게임 때도 부위원장과 홍보대사로 북측의 고위층을 만나 성공적인 아시안게임을 위해서 북측의 선수단과 응원단을 실은 만경봉호가 부산의 다대포항구에 사상처음 입항하는 공을 세웠으며 남 북이"우리는 하나다"통일깃발을 들고 전쟁을 반대하고 세계평화를 위해 앞장선다는 구호를 외치며 통일 아시안게임의 성공을 세계에 알리는데 일조를 하기도 했다.
본인은 남 북 통일이 될 때 까지 계속 활동할 것이며"요가의 목적인 질서와 자유를 존중하는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인간의 삶의 체취를 느끼는 평화의 세상을 위하여 조금씩 실천할 것 입니다.
본인의 철학은"그릇만큼 행동하면 그릇만큼 세상이 좋아진다"
이것을 실천하기 위하여 욕심 없는 가슴에 세계평화를 담기위하여 꾸준히 조금씩 실천하고 있습니다.
바쁜 일정에도 인도와 일본 미국 중국 태국 필리핀을 12회나 다니며 많은 지식과 정보를 마음에 담을려고 노력하였으며 마음속에 조금이라도 세계평화운동에 힘을 얻기 위하여 금강산, 백두산, 미국의 그랜드캐년, 중국의 장가계, 인도의 리쉬케쉬..등을 찾아서 요가수련을 하고 명상을 하는 수련을 하면서 인도 노나불라대학교에서 요가공부를 마치고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수료하였다.
부산에 6곳의 요가원을 운영하고 2500명이 넘는 요가회원들과 함께 요가생활에 만족 하고 있다.
600여명의 제자들이 부산.경남.울산..등에서 250여곳의 요가센터에서 요가를 지도하고 있다 요가대학을 설립할려고 학교부지까지 마련했다. 국내최장수 요가지도자로서 조용히 명상하며 요가세상을 펼치는데 이바지 하고져 한다.
 
한국요가 좌초 침몰하다
국내 핼스클럽이나 뚜렷한 수영장하나 없던 시절에 부산 MBC-TV와 KBS-TV에서 매일아침 방송되는 "장종수의 아침요가교실"프로는 8년간 계속되어 12곳의 요가원에 매일 3천명 이상이 몰리는 요가붐을 이루게 되어 한달수입도 일억원이 넘는 기업형으로 발전되었다.
그러나 1975년경 모든 요가방송은"에어로빅"에 밀려 중단되었고 미국에서 도입된 에어로빅장으로 몰려가기 시작하여 요가개업 10년만에 12곳의 요가원은 2곳만남고 모두 문을 닫아 부산뿐만 아니라 서울..등 한국요가는 좌초되어 침몰하기 시작했다.
결국 서울이나 지방에 요가간판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요가는 침몰하였을때 그래도 경제적으로 튼튼한 기반을 갖추고 있던 부산요가협회의 2곳의 요가교실은 한국요가를 지켜왔다.
 
단식원설립이 요가 역사 이어 줘....
본인은 이대로 주저 앉을 수 없기에 체질개선과 다이어트(체중조절)를 전문지도하는 요가식단식원을 개업하였다.
생각한대로 단식원은 또다시 붐을 이뤘고 한달에 250명씩 단식회원을 받아도 1개월전에 예약을 하고 기다려야 했다. 힘들게 시작된 요가가문이 이어져가고 있는 그 자체가 요가뿌리이다.
 
월빙시대의 주역 요가는 새롭게 태어났다
음식을 적게먹고 연한 블랙커피 한잔을 마시고는 운동 호흡 명상으로 연결하여 인도고전음악을 들으며 휴식을 취하며 월빙시대를 이끌어가는 월빙요가.....결혼을 미루는 세대들과 아이를 안낳을려는 세대들, 그리고 인생은 60부터를 주장하는 주부들의 의식이 병원에서 주는 약보다는 운동을 해야 건강하고 오래살수 있다는 의식수준 발달로 힘들지 않고 몸은 활력이 생기고 마음은 편안하고 회춘이 되는 요가를 배우기 위하여 요가센터는 가는 곳마다 인산인해다. 드디어 요가시대는 다시시작 되었다.
미국에서 요가인구 2000만명을 돌파하면서 그 위력은 한반도를 비롯하여 전세계 200여 국가에서 요가붐은 다시일어 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옛날의 요가붐과의 차이점은 전문화된 다양한 쿼리귤럼(교과과목)이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L .H 백화점 문화센터에 요가회원이 1200여명 이상이 모인이유도 다양한 요가과목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건강관리요가, 체질개선(치료)요가, 비만관리요가, 각선미를 위한 요가, 인도정통요가, 명상요가, 라자요가, 임산부관리요가, 산후관리요가, 체형관리요가, 인도고전요가, 인도아유르베다요가, 어린이요가, 실버요가, 호흡요가, 개인처방요가....등 다양한 교과과정이 다양한 계층의 요가 매니아들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 주는 것은 더 큰 발전으로 가는길이다.
 
국제요가교육시대 개막 ^0^

1. 한국요가를 40여년간 지켜온 장종수 회장은 후배들에게 수준 높은 질적 요가교육향상을 위하여 세계적인 요가지도자 교육 센터인 인도의"India Yoga Niketan Trust"와 부산시 요가협회는"Yoga Education Program Agreement"(요가교육프로그램 협정서)를 체결하고 세계적수준의 다양한 요가교과 과목을 전문적으로 교육을 시키고 있습니다.
*Niketan Trust 은 명문학교 란 뜻 입니다.
2. 장종수 회장님은 "International Yoga Certificate"
(국제요가자격증)을 취득하신 국제적인 요가지도자 이십니다.
3. 장종수 회장님은 "India Yoga Niketan Trust"에서 임명한 한국지부장입니다.
4. 장종수 회장님은 "Korea Yoga Niketan Trust"을 설립하시고 인도에 직접 가지 않고도 한국에서 인도정통요가 교육 받고 한국에서 인도요가자격증을 취득할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습니다.
5. 요가전문지도자과정은 6개월과정이며 인도정통요가지도자과정은(국내요가자격증 취득자) 3개월이며 동아대학교 요가전문지도자과정은 12개월(1년)과정이며 모두"요가자격검정시험"을 합격해야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으며 약 600여명의 요가지도자를 배출하였으며 전원 취업 개업중 입니다.
6. 매년 3월과 10월에 세계적인 요가지도자"요기"를 초청하여 국민들과 요가지도자들을 위하여 요가워크샾과 특강을 실시 하고 있습니다. 요가지도자특강을 5 7일간 받으며 신청자중에서 50명을 선발하여 하루 4 6시간 집중교육을 받고 자격증을 취득하시게 됩니다.
7. 요가지도자들 중에 "인도 현지요가교육"을 원할 경우 10명이상 수시로 출발하고 있습니다. 비행기표와 체제비, 교육비...등 약 10일예정으로 약 200만원 정도로 실비로 출발 할 수 있습니다.

 
사이비 요가교육에 현혹되지 마십시오.
1. 자격증이 중요한게 아니고 실력이 부족하면 설자리가 없다는 것을 명심 하십시오.
2. 요가선생님들! 혹시 자신이 지도하는 요가내용에 문제가 없는지 생각해본적이 있는지요. 과학적인 7단계 요가교육프로그램에 의해서 건강관리와 치료효과를 위한 요가교육을 지도하고 있는지요.
3. 1 2개월 일반인들과 함께 요가수련을 하고 요가협회와 특히 지부에서 자격증을 취득하고 스트레칭이나 미용체조식으로 지도하는 엉터리 요가강사들을 주의 하십시요.
4. 사단법인만이 마치 자격증을 주는 전문교육단체인 것처럼 말을하는 요가협회는 모두 사기 이오니 주의 하십시오.
5.우리나라의 요가는 국가자격증제도가 없으며 민간자격증제도입니다. 각 협회나 각 대학교 그 외 요가교육센터에서 자격증을 발행할수 있으며 부산정보대학 요가학과가 개설됨에 따라 정부에서 인정하는 "요가교사 자격증"제도를 설립하여 초.중.고에 "요가교사"를 임용하는 방안을 추진중에 있습니다.
6.요가교육관련. 지부개설관련.해외요가교육관련.자격증발급..등에서 허위가 발각되면 어느단체를 막론하고 사법부에 고발을 대행하여 주고 있습니다.